
앞으로 내 임금이 매년 오를 사람은 DB형, 남은 근속이 길고 직접 굴릴 사람은 DC형이다. 갈림목은 딱 하나, 내 임금상승률과 내가 낼 수 있는 투자수익률 중 어느 쪽이 높으냐다.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기준선은 연 4%다.
다만 이 4%는 "임금상승률 4% = 수익률 4%면 무승부"라는 뜻이 아니다. 실제로 계산해 보면 두 수치가 같을 때는 DB형이 이긴다. DC형은 임금상승률보다 대략 0.5~1%p 더 벌어야 겨우 본전이다. 그리고 한 번 DC형으로 넘어가면 DB형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.
- DB형(확정급여형):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고, 내가 받을 퇴직급여는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 × 근속연수로 미리 정해져 있는 방식.
- DC형(확정기여형): 회사가 매년 연간 임금총액의 1/12 이상을 내 계좌에 넣어주고, 그 돈을 내가 직접 운용해 손익을 그대로 가져가는 방식.
한눈에 비교
| 항목 | DB형(확정급여) | DC형(확정기여) |
|---|---|---|
| 퇴직급여 결정 |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 × 근속연수 | 회사 납입금 + 내 운용손익 |
| 운용 주체 | 회사 | 근로자 본인 |
| 손익 귀속 | 회사(수익·손실 모두 회사 몫) | 근로자(이익도 손실도 내 몫) |
| 유리한 조건 | 임금상승률이 높을 때 | 수익률이 임금상승률을 웃돌 때 |
| 임금피크제 영향 | 직격탄. 깎인 임금이 전체 근속연수에 곱해짐 | 영향 없음. 이미 쌓인 적립금은 그대로 |
| 중도인출 | 불가 | 법정 사유에 한해 가능 |
| 추가 납입 | 불가 | 가능(개인 부담금은 세액공제 대상) |
| 제도 전환 | DC형으로 전환 가능(회사 규약 허용 시) | DB형으로 역전환 불가 |
| 손실 위험 | 없음(회사가 부담) | 있음(원금 손실 가능) |
가장 자주 놓치는 칸이 ‘임금피크제 영향’이다. DB형은 마지막 임금 하나로 전 근속기간이 재계산되는 구조라, 정년 직전에 임금이 30% 깎이면 20년치 퇴직급여가 통째로 30% 깎인다. DC형은 매년 그해 임금 기준으로 이미 확정 적립되므로 뒤늦은 임금 삭감이 과거 적립분을 건드리지 못한다.
퇴직연금 DB형 DC형, 손익분기는 임금상승률 + 약 1%p
숫자로 보면 판단이 훨씬 선명해진다. 월 급여 300만원, 잔여 근속 10년, DC형은 매년 1회 적립하고 그다음 해부터 운용된다고 가정한 자체 시뮬레이션이다(세금·수수료 제외).
| 가정 | DB형 예상액 | DC형 예상액 | 차이 |
|---|---|---|---|
| 임금상승 5% / 수익률 3% | 약 4,887만원 | 약 4,275만원 | DB형 +612만원 |
| 임금상승 4% / 수익률 4% | 약 4,441만원 | 약 4,270만원 | DB형 +171만원 |
| 임금상승 2% / 수익률 6% | 약 3,657만원 | 약 4,288만원 | DC형 +631만원 |
두 번째 줄이 핵심이다. 임금상승률과 수익률이 똑같이 4%인데도 DB형이 앞선다. 이유는 산식에 있다. DB형은 마지막 임금을 근속 전체에 곱해주지만, DC형의 1년차 적립금은 1년차 임금 기준으로만 들어가 그 뒤로 굴러갈 뿐이다. 같은 수익률이라면 DC형은 구조적으로 임금상승률 1년치만큼 뒤진다.
그래서 DC형이 이기려면 임금상승률보다 얼마나 더 벌어야 하는지를 따로 봐야 한다.
| 잔여 근속 | 내 임금상승률 | DC형이 넘어야 할 연 수익률 |
|---|---|---|
| 10년 | 연 4% | 연 약 4.9% |
| 20년 | 연 4% | 연 약 4.4% |
남은 근속이 짧을수록 문턱이 높아진다. 굴릴 기간이 짧으면 복리가 붙을 시간이 없어 초반의 구조적 불리함을 만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. 50대 이상이면서 잔여 근속이 3~5년이라면 DC형은 사실상 연 6% 이상을 꾸준히 내야 하는 게임이 된다. 반대로 잔여 근속 20년이면 연 4.4%만 넘겨도 역전이 시작되고, 그 이후로는 격차가 복리로 벌어진다.
여기서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. 최근 3년 내 연봉 인상률의 평균이 몇 %였나. 급여명세서 세 장이면 나온다. 이 숫자가 4%를 확실히 넘고 앞으로도 그럴 조직(호봉제·정기 승급 구조)이라면 DB형을 흔들 이유가 없다. 3%를 밑돌고 성과급 비중이 크다면 DC형 쪽이 계산상 앞선다.
상황별로 뭐가 유리한가
1) 30~40대 초반, 잔여 근속 20년 이상, 연봉 인상률 3% 미만 → DC형
문턱(약 4.4%)이 가장 낮고 복리가 붙을 시간이 충분한 구간이다. 다만 전제가 있다. 실제로 굴릴 의사가 있어야 한다.
2) 50대, 임금피크제 진입 예정 → 임금피크 전에 DC형 전환 검토
DB형은 깎인 임금이 전 근속에 곱해지므로 그대로 두면 손실이 크다. 전환 시점까지의 근속분은 전환일 기준 임금으로 정산돼 DC 계좌로 넘어오므로, 임금이 가장 높은 시점에 넘기면 그 금액이 확정된다. 임금피크 적용 이후에 전환하면 이미 늦다.
3) 호봉제·정기 승급이 확실하고 잔여 근속 5~10년 → DB형 유지
임금상승률 5% 조직에서 DC형이 이기려면 연 6% 안팎이 필요하다. 남은 기간이 짧아 손실을 복구할 시간도 없다.
4) DC형으로 가서 원리금보장 상품만 담을 계획 → DB형이 낫다
가장 흔한 손해 사례다. 예금형 수익률로는 임금상승률 + 1%p 문턱을 넘기 어렵다. 운용할 생각이 없다면 DC형 전환은 회사가 지던 위험만 내가 떠안는 선택이 된다.
5) 이직이 잦거나 회사 재무상태가 불안 → DC형
DC형은 매년 내 명의 계좌로 입금이 끝나므로 적립 시점이 명확하다.
갈아타거나 바꿀 때 주의점
- 회사가 허용하는지부터 확인한다. DB형만 운영하는 회사라면 개인이 원해도 전환할 수 없다. 복수 제도를 도입했더라도, 제도 간 전환 허용 여부는 회사 퇴직연금 규약에 별도로 명시돼 있어야 한다. 인사팀에 규약 사본을 요청해 해당 조항을 직접 보는 게 가장 빠르다.
- DC형 → DB형 역전환은 불가능하다. 수익률이 떨어졌다고 되돌아올 수 없다. 이건 취소 버튼이 없는 결정이다.
- 전환일 직전 임금이 곧 정산 기준이다. 연봉 인상 직후, 임금피크 직전이 유리하다. 반대로 무급휴직이나 성과급 반영 전 시점에 넘기면 과거 근속분이 낮게 확정된다.
- DC형 부담금에 무엇이 포함되는지 본다. DC 부담금은 연간 임금총액 기준이라 상여·성과급 반영 방식에 따라 실제 입금액이 달라진다. 규약과 최근 1년 입금 내역을 대조해 보는 편이 안전하다.
- 전환 후 방치는 그 자체가 선택이다. DC형은 사전지정운용제도(디폴트옵션)에 따라 지시가 없으면 사전에 지정된 상품으로 운용된다. 뭘로 지정돼 있는지 모른 채 두면 내가 계산한 수익률 전제가 무너진다.
- 퇴직 후에는 IRP로 이전된다. 일시금으로 받지 않고 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퇴직소득세가 일정 비율 감면된다. 구체적인 감면율과 수령 조건은 국세청 홈택스에서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.
정리하면, 판단 순서는 이렇다. ① 최근 3년 연봉 인상률 평균을 구한다 → ② 잔여 근속에 맞는 문턱(10년 +0.9%p, 20년 +0.4%p)을 더한다 → ③ 그 수익률을 낼 자신과 계획이 있는지 답한다 → ④ 회사 규약에 전환 조항이 있는지 확인한다. 네 개가 모두 DC형을 가리킬 때만 넘어가면 된다.
참고 자료
자주 묻는 질문
Q. 퇴직연금 DB형에서 DC형으로 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나요?
아닙니다. 회사가 DB형만 운영한다면 근로자가 원해도 전환할 수 없습니다. 복수 제도를 도입한 회사라도 제도 간 전환 허용 여부가 퇴직연금 규약에 따로 명시돼 있어야 가능하므로, 인사팀에 규약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.
Q. DC형으로 바꿨다가 손실이 나면 DB형으로 되돌릴 수 있나요?
불가능합니다. 제도 특성상 DC형에서 DB형으로의 역방향 전환은 인정되지 않습니다. 펀드 수익률이 떨어져도 되돌릴 수 없으므로, 전환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라고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.
Q. 임금상승률과 수익률이 똑같이 연 4%면 어느 쪽이 유리한가요?
이 경우 DB형이 근소하게 앞섭니다. DB형은 퇴직 직전 임금을 근속 전체에 곱하지만 DC형은 각 연도 임금 기준으로 적립되기 때문입니다. 월급 300만원·잔여 근속 10년 가정으로 계산하면 DC형이 본전을 맞추는 수익률은 연 4.9% 안팎이고, 잔여 근속 20년이면 연 4.4% 수준으로 낮아집니다.